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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기술/퇴사&이직

기도와 지원 버튼 사이에서

박세식 2026. 6. 25. 00:00

퇴사와 이직 준비 시리즈 5/9

처음에는 가능한 포지션이 보이면 지원해봤다.

각 잡사이트에서 내 이력서를 바탕으로 추천해주는 포지션이 있었다. 완전히 맞지는 않아도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열어봤고, 공고에 맞춰 이력서를 다시 검토하고 조금씩 조정해서 넣었다.

비슷한 포지션에는 일반화된 이력서로 간편 지원도 해봤다.

처음부터 거창한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에 나가보는 감각이 필요했고, 내 이력서가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원한 곳이 10개를 넘어가고, 서류 불합격도 나오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제는 100개까지 지원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능한 포지션이면 일단 넣어봤다

공고를 볼 때 처음 기준은 단순했다.

비슷한 포지션이면 지원해볼 만하다.

내가 해온 일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공고는 많지 않았다. 개발자이면서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고, 제품 정의도 했고, 팀과 조직 사이에서 문제를 정리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채용 공고는 보통 더 명확한 이름을 원한다.

백엔드 개발자.

시니어 개발자.

개발 리더.

PM.

PO.

TPM.

내 경험은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그래서 공고를 볼 때마다 "이건 나에게 맞는 자리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연차 제한도 마음에 걸렸다. 많은 공고가 10년 차 정도를 상한처럼 두는 느낌이었다.

상시 채용도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요즘 회사들이 실제 채용 수요보다 회사 인지도를 위해 상시 채용을 열어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면 내가 보는 공고가 정말 열린 자리인지, 그냥 열려 있는 문처럼 보이는 벽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도 지원 버튼은 눌러야 했다.

확신이 있어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넣어야 하나, 맞는 곳에 넣어야 하나

처음에는 맞는 곳에 신중하게 넣고 싶었다.

회사별로 공고를 읽고, 내 경험과 맞는 부분을 찾아서 이력서를 조금씩 조정했다. 정산 자동화 경험이 더 잘 읽힐 회사가 있고, 운영 콘솔 통합 경험이 더 의미 있을 회사가 있고, 데이터 대시보드나 인프라 비용 감각이 더 중요하게 읽힐 회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서류 불합격이 나오고, 주변에서 100개를 넣어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바뀐다.

너무 골라 넣고 있는 건가.

지원 수를 늘려야 하나.

잡코리아에도 등록해서 이력서를 열어둬야 하나.

원티드, 리멤버, 링크드인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더 넓게 뿌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시장이 어렵다는 말은 지원 전략까지 바꾼다. 한 곳 한 곳 정성껏 맞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반응 자체를 얻기 어려운 시장이라면 접점을 늘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그 균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넣으면 내 방향이 흐려질 것 같고, 너무 신중하게 넣으면 기회 자체를 놓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기도가 빠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기도가 빠져 있었다.

아침을 시작할 때 기도한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도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다음 길을 예비해주시기를 구하고, 하루를 지켜주시기를 구한다.

그런데 정작 공고를 찾고, 회사를 고르고, 지원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는 기도가 없었다.

이상했다.

지금은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다음 회사, 다음 역할, 가족의 생활, 신앙과 삶의 균형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그런데 가장 실제적인 선택의 순간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있었다.

최근 덴젤 워싱턴의 졸업 축사에서 "Put God First"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하나님을 먼저 두라는 말.

그 말이 이상하게 남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하셨다고 말하면서도, 지원 과정에서는 하나님을 먼저 두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공고를 먼저 보고, 조건을 먼저 보고, 가능성을 먼저 보고, 불안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 다음에야 하나님을 떠올렸다.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의사결정의 순서에서는 하나님이 뒤로 밀려 있었다.

가족에게 아직 말하지 못한 부담

지원 버튼 앞에서 마음이 무거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가족에게 아직 권고사직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특히 아내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내는 이런 걱정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지금 상황을 그대로 말하면 불안의 감정을 더 크게 느끼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뭔가 정해진 후에 말하고 싶었다.

상황이 정리된 뒤에, 다음 방향이 생겼다고 말하고 싶다.

권고사직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보다, 다음 선택지가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에서 말하고 싶다.

그 마음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원 결과가 내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로 옮기는지, 언제 옮기는지, 어떤 조건으로 옮기는지는 가족의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아직 말하지 않은 비밀처럼 마음 한쪽에 남아 있고, 그 무게를 혼자 들고 있으려니 더 급해진다.

그래서 불합격 하나도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다.

그냥 한 회사의 결과가 아니라,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점이 또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회사가 열린 길일까

"이런 회사라면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일 수도 있겠다"는 기준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직 명확히 답하기 어렵다.

연봉이 높으면 맞는 길인가.

더 큰 회사면 맞는 길인가.

내 경력을 잘 알아주는 곳이면 맞는 길인가.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맞는 길인가.

물론 다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 자꾸 생각나는 기준은 조금 다르다.

주의 일을 할 때 회사 생각과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 기준이 마음에 남는다.

지금까지는 주일에도 회사 알림을 봐야 할 때가 있었다. 예배 중에도 작업해야 할 때가 있었다. 평일에 교회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회사 대응을 계속 신경 쓰게 됐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맡은 교회 직분은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회사 일에 묶여 있는 나는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물론 모든 직장은 책임이 있고, 어떤 역할이든 긴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회사 일을 대충 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다음 자리에서는 적어도 예배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마음이 계속 회사에 끌려가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기준이 아직 정리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하다.

지원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다

지원 버튼을 누르는 일이 믿음의 반대는 아닐 것이다.

기도한다고 지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공고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준비와 행동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원도 기도 안에서 해야 하는 것 같다.

공고를 읽기 전에 잠깐 멈추는 것.

이 회사에 끌리는 이유가 불안인지, 욕심인지, 실제 방향성인지 묻는 것.

이 자리가 열리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더 정직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

지원 버튼을 누르기 전에 짧게라도 기도하는 것.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거창한 기도가 아니어도 된다.

하나님, 이 지원이 불안의 반복이 아니라 제가 가야 할 길을 찾는 준비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떨어지는 결과도 제 가치를 흔들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가족에게 상황을 안정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제 마음도 아시니, 제 조급함을 다스려주세요.

하나님, 제가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해주세요.

이 정도의 기도라도 지원 버튼 앞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무작정 누르기 전에 멈춰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지원은 계속 해야 한다.

어쩌면 정말 100개 가까이 넣어야 할 수도 있다. 잡코리아에도 등록해야 할 수 있고, 이력서를 더 많이 열어둬야 할 수도 있다. 신중함만으로는 부족한 시장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이 넣는 것과 무지성으로 넣는 것은 다르다.

지원 수를 늘리더라도, 적어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누르는지는 보고 싶다. 이 회사가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지원하는지, 그리고 이 선택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기도와 지원 버튼 사이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빠지면, 나는 또 불안에 밀려 움직이게 될 것 같다.

잘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을 믿음이라고만 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지원 버튼 앞에서도 한 번 멈추는 기준을 두려고 한다.

Next Step 이 글은 StudyDad 작업 루프의 한 조각입니다.

글에서 정리한 생각은 GitHub의 코드와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고, 일부는 FamBlend 같은 제품 실험으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