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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기술/퇴사&이직

믿고 있는데도 조급한 날이 있다

박세식 2026. 6. 23. 22:30

퇴사와 이직 준비 시리즈 1/9

이직을 준비하면서 막연하게 잘 되겠지 하는 마음은 있다.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다음 일을 준비해놓으셨겠지, 하는 믿음도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모든 길을 직접 열어온 것은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때에 연결된 일도 있었고,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정리된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머리로는 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실 것이라고.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의 하루는 생각보다 답답하다.

뭔가 계속하고는 있다. 이력서를 열고, 프로필을 고치고, 공고를 살펴보고, 내 경력을 회사별로 다시 읽어보고, 헤드헌터와 이야기하고, 지원할지 말지 고민한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면 이런 생각이 남는다.

오늘 진전이 있었나.

믿음이 불안을 바로 지워주지는 않았다

믿음이 있으면 불안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도했으니 마음이 정리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맡겼으니 조급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실제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다음 일을 준비하신다고 믿지만, 채용 공고는 내가 직접 찾아야 한다. 다음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지만, 지금 당장 내 이력서가 그 자리에 맞는지는 내가 봐야 한다. 때가 있을 거라고 믿지만, 오늘 아무 연락이 없으면 마음은 흔들린다.

믿음이 없어서 흔들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믿음이 있기 때문에 더 정직하게 보게 되는 부분도 있다. 내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결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 기다린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새로고침하고 있다는 것. 기도하면서도 내 기준의 일정표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

분주함이 진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퇴사 후 이직 준비를 시작하면 할 일이 많다.

  • 이력서 수정
  • 리멤버, 원티드, 링크드인 프로필 정리
  • 지원할 회사 찾기
  • 회사별 JD 읽기
  • 프로젝트 경험 다시 정리하기
  • 면접 예상 질문 준비
  • 포트폴리오와 경력기술서 다듬기
  • 헤드헌터와 커뮤니케이션하기

목록으로 쓰면 분명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는 진전이 잘 남지 않는다. 서류 통과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 면접 일정이 잡힌 것도 아니고, 다음 회사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를 바쁘게 보냈는데도 제자리에서 맴돈 것처럼 느껴진다.

분주함과 진전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주함은 내가 움직였다는 증거일 수는 있지만,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켜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불안해서 더 많이 움직이는 날도 있었다. 지원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프로필을 고치지 않으면 뭔가 놓치는 것 같고, 공고를 보지 않으면 기회를 잃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지금 하는 일이 필요한 준비인지,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반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이력서를 열면 설명이 어려워졌다

이력서를 고치는 일도 생각보다 마음을 건드린다.

회사 안에서는 분명 의미 있던 일들이 있었다. 개발 조직을 이끌었고, 정산 자동화와 광고 운영 플랫폼을 만들었고, 통합 운영 콘솔도 구축했다. 운영의 반복 문제를 줄이려고 했고, 여러 부서와 조율했고, 실제로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결과도 있었다.

그런데 이력서에 쓰려고 하면 갑자기 낯설어진다.

"정산 자동화 구축"이라고 쓰면 너무 좁게 읽힌다. "개발 조직 리딩"이라고 쓰면 너무 추상적이다. "운영 효율 개선"이라고 쓰면 어디서 많이 본 말 같다. 더 잘 써보려고 하면 이번에는 내 말이 아닌 표현처럼 느껴진다.

내가 한 일을 문장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실제 맥락이 많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감각이 답답함의 큰 부분인 것 같다. 내 경력이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아닌데, 채용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순간 맥락이 줄어든다. 내 경험이 지금 시장에서 어떻게 읽힐지, 내가 어느 포지션으로 분류될지 갑자기 모호해진다.

맡긴다는 말과 준비한다는 말 사이에서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쉽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닐 것이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이 둘 사이를 계속 오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있다. 내 경력을 정직하게 정리하고, 지원할 회사를 살펴보고, 필요한 준비를 하고, 연락이 오면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만들 수 없다. 어떤 회사가 지금 사람을 뽑는지, 내 이력서를 누가 읽는지, 어떤 타이밍에 연락이 오는지, 최종적으로 어느 문이 열리는지는 내 손 밖에 있다.

이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자꾸 두 영역을 섞는다.

내가 더 잘 준비하면 결과도 빨리 나와야 할 것 같고, 오늘 많이 움직였으면 내일은 뭔가 응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준비한 만큼 바로 확인받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쉽게 지친다.

오늘의 준비를 작게 다시 나눠본다

요즘 필요한 것은 더 거창한 계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해야 할 일은 많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하루가 흐려진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작게 나눠보려고 한다.

  • 한 회사의 공고를 제대로 읽기
  • 한 프로젝트의 문제와 결과를 다시 쓰기
  • 이력서 한 문단만 고치기
  •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잠깐 기도하기
  • 결과를 확인하려는 새로고침을 한 번 멈추기
  • 오늘 할 수 없는 일은 내일로 넘기기

이런 작은 단위가 전체 답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하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 쪽으로 숨고 싶지는 않다. 동시에 준비한다는 이름으로 불안에 계속 끌려다니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오늘은 이 정도로 정리해본다.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과, 오늘 내가 해야 할 준비는 서로 반대가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준비와 내가 붙들 수 없는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면, 믿음도 준비도 쉽게 흐려진다.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아직 결과는 없다.

서류가 통과된 것도 아니고, 면접이 잡힌 것도 아니고, 다음 회사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을 나중에 보면 조금 민망할 수도 있다. 문이 열린 뒤에는 지금의 조급함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정리하는 사이 서류 통과 연락이 하나 왔다.
반가웠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완전히 편해지지는 않았다. 하나의 문이 열렸다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그다음에는 또 다른 준비와 기다림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믿음이 있어도 조급할 수 있고, 작은 진전이 있어도 마음은 계속 하나님 앞에서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상태가 진짜다.

믿고 있는데도 조급하다. 기도하면서도 자꾸 확인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다고 믿지만, 오늘의 준비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시간을 그냥 불안으로만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이 기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보고, 내가 해온 일을 정직하게 다시 정리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이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는 있다.

Next Step 이 글은 StudyDad 작업 루프의 한 조각입니다.

글에서 정리한 생각은 GitHub의 코드와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고, 일부는 FamBlend 같은 제품 실험으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