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이직 준비 시리즈 2/9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내 하루를 보면 그 믿음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는데, 손은 계속 채용 플랫폼을 새로고침하고 있다. 기도하고 나서도 다시 공고를 열어보고, 프로필을 고치고, 이력서 문장을 다시 만진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게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준비하고 있는 건지, 불안을 달래기 위해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다 해주실 거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는 내가 말하고 싶은 믿음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향해 나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막연히 잘 되겠지 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목적성을 가지고 오늘의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합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맡겼다고 말했지만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기도할 때는 분명 맡긴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알맞은 때에 필요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구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회사와 자리, 사람과 타이밍까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나면 다시 확인한다.
- 새 공고가 올라왔는지
-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지
- 헤드헌터 메시지가 도착했는지
- 프로필 조회가 있었는지
- 이력서 문장이 너무 약해 보이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직 준비를 한다면 당연히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채용 공고는 실제로 바뀌고, 연락은 놓치면 안 되고, 프로필은 계속 다듬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확인한 뒤에 마음이 더 편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새 공고를 보면 또 비교하게 되고, 연락이 없으면 더 조급해지고, 프로필을 고치면 다른 문장이 또 부족해 보인다. 확인은 잠깐의 안심을 주지만, 곧 더 많은 확인을 부른다.
분주함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분주함을 한 가지로만 보지는 않으려고 한다.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분주함이 있다. 이력서를 고치고, 경력을 정리하고, 회사의 문제를 읽고, 면접을 준비하는 일은 실제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피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믿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예비하셨다고 믿는다면, 그 자리에 갔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내 경력을 정직하게 정리하고, 내가 가진 경험을 필요한 곳에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알아보지 못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분주함도 있었다.
그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불안을 잠시 눌러두기 위한 움직임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이력서 한 문단을 고치는 것은 준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미 고친 문장을 계속 열어보며 확신이 사라질 때마다 단어만 바꾸는 것은 불안일 수 있다.
지원할 회사를 찾는 것은 준비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지원하지 않을 회사까지 끝없이 열어보며 내가 부족한 조건만 확인하는 것은 불안일 수 있다.
헤드헌터와 이야기하는 것은 준비일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메시지에 즉시 반응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처럼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불안일 수 있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바쁘다.
하지만 끝나고 난 뒤의 마음이 조금 다르다. 준비의 분주함은 작게라도 정리가 남는다. 불안의 분주함은 더 많은 의심을 남긴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지 않으실 것처럼 느껴질 때
가장 깊은 불안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충분히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말로는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내가 계속 밀어붙여야만 문이 열릴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오늘 공고를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오늘 이력서를 더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오늘 누군가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흐름이 끊길 것 같다.
물론 어떤 기회는 내가 움직여야 만난다.
지원하지 않으면 서류는 들어가지 않고, 연락하지 않으면 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와 행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모든 문을 직접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이직 준비는 금방 무거워진다. 모든 공고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마음은 내가 모든 변수를 붙들고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분주함은 성실함이 아니라 통제 욕구에 가까워진다.
오늘 해야 할 일과 오늘 붙들 필요 없는 일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시작할 때 일을 조금 나눠보려고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바쁜 일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준비에 가까워야 한다.
- 지원할 회사 한두 곳을 제대로 읽기
- 이력서에서 한 프로젝트만 정리하기
- 이미 지원한 곳은 정해둔 시간에만 확인하기
- 연락이 온 곳에는 성실하게 답하기
- 면접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내 경험을 사실대로 정리하기
- 이 선택이 하나님 앞에서도 정직한지 잠깐 멈춰 보기
오늘 붙들 필요 없는 일도 있다.
- 아직 열리지 않은 자리까지 걱정하기
- 연락이 없는 이유를 혼자 추측하기
- 다른 사람의 이직 속도와 내 속도를 비교하기
- 모든 플랫폼을 계속 새로고침하기
- 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내 경력 전체를 의심하기
이렇게 나눠도 마음이 바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조금은 보인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안을 반복하고 있는지 구분할 작은 기준이 생긴다.
기도는 결과를 빨리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다
이직 준비를 하다 보면 기도도 조급해질 때가 있다.
기도했으니 빨리 응답이 와야 할 것 같고, 하나님께 맡겼으니 이제 어떤 신호가 보여야 할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가 잘못 기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기도는 결과를 빨리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닐 것이다.
기도는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다시 가져가는 시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내 계획, 내 두려움, 내 조급함, 내 비교, 내 통제 욕구를 숨기지 않고 가져가는 시간.
그러면 기도 후에도 공고를 볼 수 있다.
기도 후에도 이력서를 고칠 수 있다.
기도 후에도 지원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다만 그 행동들이 "내가 다 붙들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나오는지, "오늘 내게 맡겨진 만큼 해보자"는 마음에서 나오는지 조금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단지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반복인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을 향해 나를 준비시키는 선택인지도 물어볼 수 있다.
분주한 하루를 한 가지로 해석하지 않기
나는 아직 덜 분주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공고를 자주 보고, 이력서 문장을 다시 읽고, 연락이 없는 시간을 신경 쓴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하루가 갑자기 단순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내 분주함을 모두 성실함으로 해석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떤 분주함은 필요한 준비다. 어떤 분주함은 결과를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떤 분주함은 하나님께 맡겼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붙들고 싶은 영역이다.
그걸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동시에 내가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뜻도 아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오늘 내가 붙들 수 없는 결과는 다시 내려놓는 것. 그리고 그 준비가 하나님 뜻에 합한 방향인지 계속 살피는 것.
아직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직 준비의 하루를 그렇게 구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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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정리한 생각은 GitHub의 코드와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고, 일부는 FamBlend 같은 제품 실험으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