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이직 준비 시리즈 3/9
권고사직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섭섭함이었다.
허탈함도 있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은 매년 들었다. 급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버텼다. 당장 더 나은 조건을 찾기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상황이 나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내 월급을 회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정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했다. 회사는 회사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 경영상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마음과 별개로, 섭섭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 버틴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고정비는 쉽게 승인됐다
마음이 더 싸해졌던 장면이 있다.
외부 소싱 업체에 일을 맡기기 위해 자리가 두 개 정도 필요했다. 자리당 2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매달 400만 원의 고정비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표는 거의 바로 말했다.
아, 그럼 써야죠. 무조건 써야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싼데요.
필요한 자리가 세 개였어도 승인됐을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외부 소싱 업체에 나가는 몇백만 원의 고정비는 필요한 비용으로 판단됐다. 그런데 내 월급 몇백만 원은 이제 회사가 지불하기 어려운 비용으로 판단됐다.
그 차이가 마음에 남았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계산이 있었을 수 있다. 외부 인력은 필요한 만큼만 쓰고 줄일 수 있고, 4대보험이나 내부 인력 운영 비용도 다르게 계산될 것이다. 조직 운영상 더 유연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런 설명이 마음을 바로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같은 몇백만 원인데, 하나는 너무 싼 비용이었고 하나는 어려운 비용이었다.
그게 섭섭했다.
나는 비용을 줄이는 일을 해왔다
더 복잡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회사에서 해온 일이 결국 비용을 줄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운영팀이 엑셀로 하던 정산 업무를 시스템으로 옮겼다. 입점비 이체 내역을 수기로 옮기던 흐름을 자동화했다. 카드 부분취소와 예외 검수를 사람이 하나씩 확인하던 시간을 줄였다.
어떤 업무는 4~5시간 걸리던 것이 30분으로 줄었다.
어떤 업무는 2시간 걸리던 것이 10분으로 줄었다.
어떤 직원은 내가 만든 시스템이 없었으면 업무가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이거 안 만들어줬으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라고도 했다.
그 말은 고마웠다. 동시에 그 말이 내 역할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화려한 기능을 만든 사람이라기보다, 회사 안에서 사람이 버티던 반복 업무를 시스템으로 옮기는 일을 해왔다. 타부서가 매번 개발팀에 요청해야 했던 데이터 확인을 직접 볼 수 있게 만들었고, 여러 사이트를 오가던 운영 흐름을 하나로 묶었고, 사람이 기억하고 처리하던 예외를 시스템에 녹였다.
회사의 새는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운영팀의 리소스를 줄이고, 개발팀의 반복 요청을 줄이고, 타부서의 수작업을 줄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줄이고 나니 내 자리도 비용처럼 보였을까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여온 비용 안에 내 자리도 들어 있었던 걸까.
물론 이것이 정확한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회사가 정말 그렇게 계산했는지는 모른다. 내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회사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내가 만든 시스템들이 운영을 덜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이 직접 하던 일을 줄였다. 내가 없어도 다음 사람이 운영할 수 있도록 인계 문서도 남겼다. 단독 개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내가 떠나도 운영이 멈추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 안정된 상태가 내 필요성을 덜 보이게 만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줄여준 비용이 회사에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회사가 줄이려고 한 비용 중 하나가 내 월급처럼 느껴졌을 때,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버틴 시간은 숫자로 잘 보이지 않는다
6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버틴 시간이 있었다.
야근도 있었다. 주말에도, 연휴에도 노트북은 거의 필수로 들고 다녔다. 솔루션 업체에 가까운 숙명처럼, 무슨 일이 생기면 대응해야 했다. 급여가 동결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까 버텼다.
그 시간들은 이력서에 잘 쓰이지 않는다.
정산 처리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운영 시간이 몇 퍼센트 줄었는지는 숫자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연휴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던 마음, 급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삼키던 마음, 회사가 나아지겠지 하고 버틴 시간은 숫자로 쓰기 어렵다.
그래서 권고사직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섭섭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순히 월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동안 같이 버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건비였을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시간이었다.
집에서도 여유가 사라졌다
이 마음이 회사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힘들다.
점점 여유를 잃어가니 집에서도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졌다. 모두가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학교 공부를 해야 하고, 아내는 옆에서 공부를 시키며 힘들어한다. 나는 그 둘을 지켜보면서도 받아줄 여력이 없다.
그러다 화를 낸다.
내가 힘든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집에서까지 날카로워지는 내 모습이 좋지는 않다. 회사에서 받은 섭섭함과 불안이 집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무겁다.
이직 준비는 내 문제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면, 집의 공기도 같이 좁아진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여유 없는 모습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게 또 미안하다.
하나님 앞에서 이 마음을 바로 정리하지 못하겠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다음 길을 예비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이 섭섭함을 바로 없애주지는 않는다.
회사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도 않다.
회사가 어렵다는 것도 알고, 경영진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6년 넘게 버틴 사람으로서 느끼는 서운함과 허탈함은 하나님 앞에서도 숨기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감정을 빨리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회사에서 줄여온 비용, 줄여온 시간, 덜어낸 반복 업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잃어온 여유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놓고 싶다.
아직은 답을 모르겠다. 다만 이 질문은 남아 있다.
나는 회사의 비용을 줄이는 사람이었는데, 왜 마지막에는 나도 줄여야 할 비용처럼 느껴졌을까.
그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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