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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기술/퇴사&이직

문이 열리기 전에도 기준은 조금 생긴다

박세식 2026. 6. 26. 00:00

퇴사와 이직 준비 시리즈 9/9

아직 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합격 소식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음 회사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가족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한 것도 아니고, 지금 회사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분명하게 정리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기록을 여기서 한 번 닫아보려고 한다.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는 답답함이 컸다.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해두셨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실제 하루는 분주했다.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고치고, 지원하고, 기다리고, 불합격을 보고, 다시 공고를 봤다.

뭔가 하고는 있는데 앞으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결과가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적어도 무엇을 계속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가 붙들 수 없는지, 어떤 말은 내 말이 아닌지, 어떤 기준은 다음 자리에서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믿는다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제일 헷갈렸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면 나는 어디까지 해야 할까.

공고를 계속 보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일까.

지원 수를 늘리는 것이 조급함일까.

기도하면서도 이력서를 고치는 것이 맞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믿는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해야 했다.

업무와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회사에 있을 때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남기고, 포지션에 맞춰 이력서를 고치고, 지원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그 일을 하면서 결과까지 내 손으로 만들려고 하면 금방 지쳤다.

서류 결과는 내가 정할 수 없다.

면접관의 판단도 내가 정할 수 없다.

채용 시스템의 상태값도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지금 회사의 퇴사 일정도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믿음은 준비를 멈추는 말이 아니라, 준비와 결과를 구분하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이 기준 하나는 남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피하지 않는다.

내가 붙들 수 없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을 한다.

완벽하게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방향은 그쪽이어야 할 것 같다.

내 경력은 한 문장으로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내 경력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나는 백엔드 개발자라고만 말하기에도 애매했고, 개발 리더라고만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운영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반복 업무를 줄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개발과 운영 사이에서 문제를 정리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 애매함이 불리하게만 느껴졌다.

채용 공고는 명확한 이름을 원한다.

백엔드.

시니어 개발자.

개발 리더.

PO.

PM.

TPM.

그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기록하면서 조금 보인 것이 있다.

내가 반복해서 해온 일에는 패턴이 있었다.

사람이 버티던 수작업을 본다.

그 일이 왜 힘든지 현업의 말로 듣는다.

수작업 구간을 단계별로 나눈다.

시스템이 대신할 수 있는 것과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것을 나눈다.

시간, 오류, 동선, 의존도 같은 지표로 결과를 본다.

이렇게 놓고 보니, 나는 단순히 관리자 페이지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운영 비용과 반복 업무를 시스템으로 줄이는 일을 해온 사람에 가까웠다.

이 문장이 완벽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낫다.

적어도 내가 어디서부터 설명되어야 하는지 조금은 보인다.

섭섭함도 기준을 만들었다

권고사직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섭섭함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6년 넘게 버텼고, 회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야근과 주말 대응도 있었고, 연휴에도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수작업을 줄이고, 타부서의 반복 업무를 시스템으로 옮겼다.

그런데 결국 회사는 내 자리를 줄여야 할 비용처럼 판단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감정이 그냥 서운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록하면서 보니, 이 감정도 다음 기준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다음 회사에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

연봉만 볼 것인가.

회사 규모만 볼 것인가.

기술 스택만 볼 것인가.

물론 다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인지도 봐야 한다.

반복 업무를 줄이는 일을 가치 있게 보는 곳인지.

운영과 자동화의 효과를 비용 절감이라는 숫자만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회복하는 일로도 보는 곳인지.

주일과 섬김의 시간을 계속 회사 알림에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곳인지.

이런 기준들이 생겼다.

아직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전에는 잘 보지 않았던 기준이다.

작은 상태값에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도 알았다

지원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작은 신호에 많이 흔들렸다.

공고 조회수.

프로필 열람.

서류 검토 중 표시.

불합격 상태.

채용팀 메일 한 줄.

코딩테스트를 제출했는데 전형 종료 메일을 받은 일도 있었다. 제출 완료 메일은 있었지만, 플랫폼에는 불합격으로 표시됐다.

그때 처음에는 상황이 다시 정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불합격 상태를 보니 바로 마음이 꺾였다.

그 일을 지나며 알았다.

나는 결과 자체보다 상태값에 많이 묶여 있었다.

물론 채용 프로세스의 상태값은 중요하다.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상태값이 내 전체를 해석하게 두면 안 된다.

불합격 하나가 내 경력 전체의 판정문은 아니다.

메일 하나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전체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기준도 남았다.

상태값은 확인하되, 상태값으로 나를 해석하지 않는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계속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기도는 따로 떼어놓을 일이 아니었다

지원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기도가 빠져 있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침과 저녁에는 기도했다.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했고, 잠들기 전에 기도했다.

그런데 정작 공고를 고르고, 지원 버튼을 누르고, 이력서를 고치는 가장 실제적인 순간에는 기도가 없었다.

그게 이상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다음 일을 준비하셨다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 선택의 순간에는 먼저 공고를 보고, 조건을 보고, 가능성을 보고, 불안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원 버튼 앞에서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회사에 지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불안해서 누르는 것인지.

내 경험과 이어지는 자리인지.

이 자리가 열렸을 때 하나님 앞에서 더 정직하게 살 수 있을지.

가족에게 어떤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짧게라도 묻고 가야 한다.

기도는 지원과 따로 떨어진 시간이 아니라, 지원 버튼 바로 앞에도 있어야 했다.

이 기준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 같다.

기록은 불안을 없애주지는 않았지만 흩어지지 않게 했다

이 시리즈를 쓰면서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다.

결과가 없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지원할 곳을 찾다 보면 피곤하고, 가족에게 아직 말하지 못한 부담도 남아 있다. 집에서도 여유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기록은 적어도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조금 막아줬다.

막연한 감정이 문장으로 내려오면, 그 감정이 조금 다뤄진다.

섭섭함이라고 적으면 섭섭함이 보인다.

허탈함이라고 적으면 허탈함이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면, 오늘 해야 할 일이 조금 보인다.

AI가 정리한 문장이 내 말이 아니라고 느끼면, 내가 실제로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다시 찾게 된다.

기록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글을 쓰는 지금도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합격도 없고, 다음 회사도 정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이전과 똑같이 막막하지만은 않다.

이직 준비는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다시 보는 일이었다.

내가 무엇에 섭섭했는지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일이었다.

기도와 지원을 다시 붙이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와 붙들 수 없는 결과를 나누는 일이었다.

AI가 만들어준 말이 아니라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자리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조금씩 정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결과가 생기면 이 기록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 결과는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준비한다.

불안해서 움직이는 날도 있고, 믿음으로 움직이는 날도 있다.

둘이 섞여 있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해본다.

완벽하게 정리된 믿음은 아니어도.

지금은 그 정도의 기준을 들고 다음 문 앞에 서 있다.

Next Step 이 글은 StudyDad 작업 루프의 한 조각입니다.

글에서 정리한 생각은 GitHub의 코드와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고, 일부는 FamBlend 같은 제품 실험으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