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me 01. 나와 아이의 내면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은 시간, 우리 집의 풍경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아직 아이만의 방이 따로 없다 보니 거실은 온 가족의 쉼터이자 아이의 공부방이 된다. 조그만 상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챗GPT 창을 띄워놓고 있는 아이. 학교에서 내어준 수행평가 과제를 채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곁에서 아이가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아 적는 아이의 손길에 아무런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제출해야 할 숙제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탓인지, 아이의 질문은 점점 짧고 기능적으로 변해갔다. 화면에 뜨는 텍스트를 자기 말로 다시 생각해보기보다 그대로 옮겨 적는 모습은, 기술을 영리하게 활용한다기보다 숙제의 빈칸을 서둘러 채우는 과정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는 아내대로 속이 탄다.
“생각을 하면서 질문을 해야지, 그냥 나오는 대로 베껴 쓰면 네 공부가 안 되잖아.”
아내의 당연하고 현실적인 조언에 아이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쉰다. 기술은 날로 똑똑해져서 숙제를 편하게 도와주는데, 거실에 모여 앉은 우리 가족의 저녁 풍경은 어째서 더 피로해지기만 하는 걸까.
처음에는 나도 아이에게 쉽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쓰면 안 돼. 네 생각을 먼저 해야지.”
그런데 말하려다 멈췄다. 나 역시 처음부터 AI를 좋은 동료로 받아들였던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AI를 좋은 동료처럼 쓴 것은 아니었다.
19년 동안 IT 업계에서 일하며 많은 기술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나오고, 개발 방식이 바뀌고, 자동화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술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조금 달랐다. 주니어 개발자가 며칠 붙잡고 있을 코드를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내는 장면을 보며 신기했고, 동시에 이 도구를 어떻게 써야 내 일의 방식이 더 좋아질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나도 AI를 빠르게 답을 뽑아내는 도구처럼 쓸 때가 많았다. 더 빨리 코드를 만들고, 더 빨리 초안을 얻고, 더 빨리 결론에 도착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과만 앞세울수록 이상하게 내 생각은 얕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태도를 바꿔보기로 했다.
AI를 빠른 정답을 내놓는 자판기처럼 쓰기보다, 내가 생각을 더 잘 펼치도록 도와주는 동료로 대하기로 한 것이다. 코드를 대신 짜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놓친 구조를 묻는 동료. 글을 대신 써주는 기계가 아니라, 내 생각의 빈틈을 비춰주는 거울. 정답을 내놓는 자판기가 아니라, 질문을 더 잘하게 만드는 파트너.
그렇게 보자 AI를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나는 이제 거의 매일 AI를 쓴다. 코드를 짤 때도 쓰지만, 그보다 더 자주 생각을 정리할 때 쓴다. 막연한 아이디어를 던져보고, 글의 구조를 물어보고, 내가 놓친 반론을 찾아보고, 어떤 표현이 더 정확한지 확인한다.
중요한 건 AI가 내 생각을 대신하게 두지 않는 것이다. 먼저 내 생각을 세우고, 그다음 AI에게 묻는다. 내가 쓰려는 글의 방향은 무엇인지,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지,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지점은 어디인지 먼저 적어본다. 그러고 나서 AI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AI는 내가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위험하고,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유용하다.
우리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도 챗GPT가 3초 만에 뱉어내는 정답지가 아니었다. 정답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는 대신, 이 영리한 기술을 내 생각을 도와줄 좋은 동료로 대하는 유연한 태도였다.
만약 아이가 숙제를 할 때 인공지능을 정답 자판기가 아닌 동료로 대했다면 어땠을까.
“환경 문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를 뭐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내가 생각한 내용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줘.”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과제는 지루한 노동이 아니라 조금은 덜 막막한 협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화면에 뜬 답을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자기 생각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정답만 꺼내 오는 창고가 아니다. 내 안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내 지식을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해 줄 수 있는 도구다.
아이에게 건네고 싶은 세 가지 사용법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사용법은 거창하지 않다.
첫째, 답을 묻기 전에 내 생각을 먼저 한 줄이라도 적어보는 것.
“환경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내가 사는 동네의 공기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이렇게 어설픈 문장이라도 먼저 세워두면, 챗GPT는 내 생각을 대신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내 생각을 다듬어주는 동료가 된다.
둘째, “정답을 알려줘”가 아니라 “내 생각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줘”라고 묻는 것.
정답을 달라고 하면 아이의 생각은 멈춘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짚어달라고 하면, 아이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디가 약한지, 어떤 근거가 더 필요한지, 어떤 질문을 더 던져야 하는지 배우게 된다.
셋째, 나온 답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내 말로 다시 바꾸는 것.
챗GPT가 아무리 좋은 문장을 만들어도, 그 문장이 곧 내 문장은 아니다. “이 내용을 내 말투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중학생이 쓴 글처럼 자연스럽게 고쳐볼 수 있을까?” 하고 다시 묻는 과정에서 비로소 아이의 언어가 생긴다.
기술을 이렇게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화면 앞의 시간도 그저 숙제를 빨리 끝내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다듬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한 줄의 아빠 생각
AI는 빠른 답을 얻기 위해서만 쓸 때보다, 내 생각을 먼저 세우고 도움을 구할 때 더 쓸모 있어진다. 기술은 내 생각을 대신하는 기계가 아니라, 내 생각을 더 넓게 펼치게 해주는 강력한 동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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