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효율을 좋아했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일을 좋아했다. 반복되는 일을 자동화하고, 병목을 줄이고, 같은 시간에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왜 계속 더 높이 쌓으려고만 했을까?
아마도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높이만 쌓는 일은 생각보다 불안정할 수 있다는 것을.
높은 탑은 작은 흔들림에도 크게 흔들리지만, 넓은 토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헤세는 게으름을 무기력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고, 다시 생각할 힘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바라보았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너무 ‘쌓는 일’에만 익숙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최근 TPM(Technical Program Manager)이라는 역할을 다시 들여다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내가 해왔던 일들 중 많은 부분은 TPM의 역할과 닮아 있었다.
일정을 맞추고,
리스크를 줄이고,
여러 팀 사이의 맥락을 연결하고,
프로그램, 프로덕트, 프로젝트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
처음에는 이런 역할을 효율과 실행력의 관점에서 많이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좋은 TPM, 혹은 좋은 리더의 역할은 그보다 먼저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일이든 함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흔들리는 이유는 일정 때문만은 아니다.
신뢰가 부족하거나,
충분한 대화가 없거나,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조직이 이미 지쳐 있을 때 일은 쉽게 흔들린다.
결국 일의 성패는 일정이 아니라 토대에서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시스템도 쉬게 한다.
서버는 모니터링하고,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점검하며,
기계는 기름칠을 한다.
그런데 사람에게만 항상 최고의 생산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지속 가능한 조직은 항상 가장 빠른 조직이 아니다.
사람이 지치지 않는 속도를 찾고,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오래 달릴 수 있는 조직이 결국 더 멀리 간다.
이 생각은 조직뿐 아니라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아무 목적 없이 책을 읽는 시간.
생산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제는 더 높이 쌓는 것보다,
더 넓게 다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빨리 성장하는 사람보다,
오래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프로그램이든,
프로덕트든,
프로젝트든,
결국 오래 버티는 힘은 높이가 아니라 토대에서 나온다.
오늘도 하나를 더 쌓기 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조급함보다 방향을, 속도보다 토대를 먼저 생각해 본다.
글에서 정리한 생각은 GitHub의 코드와 포트폴리오로 이어지고, 일부는 FamBlend 같은 제품 실험으로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