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꼭두각시로 살아왔다

꼬부기아빠 2023. 8. 1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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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의 인기 장난감 중 하나인 바비 인형. 소녀들은 자신이 꿈꾸는 헤어 및 의상 스타일, 직업 등을 선택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이 인형을 통해 즐기며 놉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바비 인형이 살아있고 스스로의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저, 아이들이 선택하여 꾸며 놓은 머리와 옷, 직업을 마음에 들어 할까요?

  • "얘는 뭘 이런 걸 입혀놨어? 촌스럽네, 진짜."
  • "난 이 일 별로야, 내가 하고 싶은 건 저거라고."

 

맘에 드는 것 하나 없는 현실에 입을 쭈욱 내밀어 비죽거리며 자기에게 처한 상황을 한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말이죠. 어머니께서 옷 사줄 테니 나가자라고 하셨을 때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고르고 입어보고 하는 것들이 마냥 귀찮았습니다. 머리도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들어가서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죠. 제 스타일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사주시는 옷을 입으며 남이 잘라주는 헤어 스타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30대 중반을 넘었다는 말씀을 드렸던가요? 지금의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자신에게 스스로 선택하여 입혀놓은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거 괜찮네, 이거 어때?'라고 물어오면 '응, 괜찮네, 그거 사' 라며 선택을 다른 이들에게 맡겼죠. 물론 지금도 옷이나 신발 사러 가자고 할 때면 집 밖으로 나가기를 귀찮아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저를 보면 바비 인형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겠죠? '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없는데, 넌 왜 선택을 포기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전 바비 인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와 바비는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순수한 사이입니다.

 

바비의 콧방귀보다 더 웃긴 것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도 제 선택이었고, 머리 하러 갔을 때에도 가만히 있었던 것도 제 선택이었으며, '응, 괜찮네, 그거 사'라고 말하는 것 역시, 모든 것이 제 선택이었습니다. 아재씩이나 되어서 바비 인형 코스프레 하는 것도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저 가만히 다른 사람이 제 선택을 대신할 수 있도록 맡기고 앉아있네요. 한 번 웃을 타이밍 같습니다. 푸하하.

 

왜 이런 선택 같지도 않은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왜 내가 결정지을 수 있는 항목들을 남이 늘어놓은 선택지에서 찾고 있을까요?

 

어렸을 때의 저는, 얌전하고 의젓한 아이, 영감,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예스맨이었죠. '이거 할래?'라는 물음에 '네', '저거 해볼래?'라는 물음에도 '네'. 이런 예스맨을 좋아하는 단체 중에 하나는 군대겠죠.

 

한창 자유로울 20대 남자의 자유를 구속하고 상명하복 시스템을 가진 군대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전 군대에서는 인기인이었습니다. 군대 시스템 상 예스맨이 최고였죠. 제게 직업 군인을 하라는 용어인 말뚝 박으라고 말씀 주신 분들이 중대에서는 소대장, 행정 보급관, 대대에서는 교육장교와 인사장교가 있었죠.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부사관 및 장교 지원을 권유했었습니다. 물론 그런 권유들은 짬(쉽게 말해 계급)이 좀 되다 보니(병장이었더랬죠) 배짱배짱거리며 튕겨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예스맨은 단순히 시키는 일에 '네'라는 대답과 함께 그 일을 처리만 하면 됩니다. 특히 군대는 반복, 숙달이 중요하고 그렇게 되도록 일정을 잡고 훈련을 시킵니다. 전 그곳에서 사격지휘병으로 인정받고, 대대의 사격지휘병들 모아 놓고 그들을 교육하면서 가치를 드러냈죠. '군생활이 제일 쉬웠어요'라고 하면 몰매와 함께 재입대를 강요받을 수 도 있겠지만, 그만큼 편했습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극히 적었고, 선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시키는 것만 해내면 인정받았죠.

 

군대에서는 선택에 의한 고민 같은 것들은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전 둥글둥글한 성격의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식의 우유부단함을 갖고 있고,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식의 뭐 하나 쉬운 결정도 잘 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대신 결정한 선택들을 제가 선택한 것 마냥 착각하며 살아왔죠. 하지만, 군대에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면 만사 OK였습니다. 이런 군대 시스템에서 예스맨 성향은 최고의 재능이었습니다.

말뚝 권유를 뒤로한 채 사회에 나와 어느덧 경력이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제 회사에서는 뭔가를 결정짓고 책임질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군대에서는 최고의 재능이라고 여겼던 예스맨을 힘들게 합니다. 예스맨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위에서 시키는 일에 대한 것들만 잘 처리해 왔습니다. 이러니 어떤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는 예스맨은 아무 생각이 없는 놈으로 비쳤고, 사람들에게는 특히 결정권자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아웃 오브 안중이었습니다. 단순히 전 손쉬운 놈이 되었고, 언제라도 말만 하면 들어주는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점점 제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이 한심스러웠습니다.

 

대화 중에 언제 얘기를 꺼내야 하는지 타이밍 한 번 잡기가 힘들었고, 필요한 말과 굳이 안 해도 될 말들을 구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저를 가장 잘 아는 친구는 이런 모습을 많이 답답해했습니다. '왜 아까 얘기하지 않았냐? 그 자리에서 얘기했어야지.',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욕을 먹느냐?' 하며 말이죠.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짓는 상황들이 너무 어렵습니다. 조금 전에 답답해하던 친구는 또 '네가 언제는 고민하고 결정한 것들이 있냐? 안 해봤으니 어렵지.' 라며 한마디 더합니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라던데, 제 문제만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제게 닥친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대응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가 처한 상황과 문제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간단해 보일 수 있는 문제고 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예스맨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살아온 저에게는. 다시 한번 웃을 타이밍 같습니다. 푸하하.

 

최근 스스로 결정을 짓고 답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다른 분과 대화를 하던 중에 제가 내려놓은 답과 어긋나는 것을 부탁하셔서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가 수락하실 줄 알고 계셨나 봅니다. 전 말만 하면 들어주는 손쉬운 예스맨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거절을 해보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정말 어려운 분, 높은 분이셨지만 그 순간에는 너무 작게 느껴졌습니다. 제게 얻을 게 있기에 부탁을 이어 나가며  자신의 것을 더 내어 놓으셔야 했죠.

 

누구나 성장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있게 스스로 결정을 내리면서 당당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내 권리를 너에게 양도할게. 내 주인이 되어줘' 라며 선택 그 자체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나요?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풀면서 스스로에게 답을 내려줄 때 그 자신이 성장해 가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실패에 대한 핑계의 여지를 두기 위해 선택을 포기하고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선택과 책임 모두를 제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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